불완전한 인간

불완전한 인간

불완전한 인간은 18세기 중반, 유럽의 예술과 철학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내걸고, 주류문화가 숨겨놓았던 인간의 반쪽인 육체, 감각, 충동, 본능 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인간의 불완전함이 강조되며 이성과 열정 사이의 메꿀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한 파멸도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이성과 열정 사이의 갈등이 암시된 채로 나타나나 1800년대 무렵에는 정신과 육체 사이의 대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주인공 파우스트가 이성으로 세계를 보면서 만물의 근원을 파헤치려 하지만 실패하고 메피스토와 결속하여 관능적인 쾌락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계몽주의 시기 동안 생긴 문화 혁명입니다. 전례 없는 발전속도를 자랑하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찾아낸 진보들은 지식인들의 사상, 예술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완전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유럽 문화 전반에 걸쳐서 확산되어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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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 발전의 인간의 불완전함

근대사회발전의 불완전함 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불완전한 인간은 심해로 더욱 깊이 파묻혀 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성의 타자’, 즉 이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욕망, 충동, 본능 등과 같은 요소들이 예술적 주제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요소들은 예술 작품에서 더욱 다양하고 강렬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낭만주의 예술에서 보여지려 한 것은 광기와 인간의 죽음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안나벨 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여주인공 안나벨 리가 마치 미친 듯이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시로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밤하늘과 별들을 담아내며, 동시에 황당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와 집 등도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즉, 낭만주의 예술은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광기와 죽음, 환상 등이 자주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질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실존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과 관련하여 새로운 생각과 접근 방식이 제시되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독일의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프랑스의 사르트르를 거치며 발전되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의 죽음, 고통, 죄책감, 투쟁 등 현재 세상에서 겪게 되는 한계 상황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 관념 철학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개인 경험과 연관된 것임으로 실존주의 철학적 접근법을 요구합니다.

야스퍼스는 ‘세계관의 심리학’에서 위와 같은 주제를 탐구함으로써 일반적인 관념 철학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새롭게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부조리 문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한계 상황과 불완전함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부조리 문학에서 반영되어 있으며,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인간은 이상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계 상황과 고통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인 본모습을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로움이 있지만 동시에 그 자유로움 때문에 얻어진 선택과 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겪게 되는 한계 상황과 고통이 됩니다. 인생의 목적은 없으며, 모든 것은 개인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사르트르는 “무”란 개념을 사용하여 이러한 관점을 설명합니다. “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지만, 사실상 우리 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안에서 태어나고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본래 형태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르트르는 인간이 얼마나 혼자인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한계 상황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인간은 본래 “무”

인간은 본래 “무”와 같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 식물 그리고 자연의 사물과는 다르게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세상에 대해 보다 복잡하고 개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자연의 사물은 즉자적인 존재로서 그대로 있기만 하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사유를 가지지 않습니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하고 인식합니다.

미래를 향해 뭔가를 구상하려는 속성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경향도 있으며, 이러한 특징들이 인간이 대자적인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즉자적인 존재와 동시에 대자적인 존재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내면과 외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여정을 계속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미래와 과거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이것들이 모두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언제나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무와의 관계’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의식과 사유, 그리고 감정 등 모든 면에서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나아가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여정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단순히 ‘무와의 관계’에 불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독특하고 복잡한 존재입니다.